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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의 성공신화! 이스트소프트의 김장중사장이 들려주는 창업과 사업이야기

by 홈커뮤니케이션 2011. 5. 25.

모바일 바람을 타고 제 2의 창업 붐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개발자들도 둥지를 박차고 나와 도전을 선택한다. 학생들도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해 보겠다며 창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어떤 이들은 ‘제 2의 닷컴 붐’이 아니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거품없이 성장한 사업이 있었나? 옥석은 가려지기 마련이다.

IMF 구제 금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감지한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몰랐다. 아는 이들도 모르는 척 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창업해 엎어져본 경험이 있는 필자의 눈에는 도전자들이 정말 대단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김장중 이스트소프트 대표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은 더 들었다. 그는 1972년 1월생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이다. 그런데 사업 경력만 놓고 보면 만만치 않다. 93년 창업을 했으니 2년 후면 사업을 한 지 20년을 맞이한다.

김 사장을 만나보고 싶었던 이유가 몇가지 있다. 우선 학생 때 창업했으니 최근 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 학생이라면 창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자기는 창업해서 여러 고비를 넘기고 회사를 잘 키워냈으면서 창업을 안했을 거라고 하니 의아했다.

또 한가지는 이스트소프트라는 회사가 아주 독특하기 때문이다. 이스트소프트는 게임 그룹과 소프트웨어 그룹으로 이뤄져 있다. 국내 많은 게임 회사들이 있지만 대부분 게임에 주력을 하고 다른 사업엔 거의 진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스트소프트는 알툴즈 시리즈를 비롯해서 알툴바, 인터넷하드, 알약을 비롯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계속 선보이고 있다. 게임이나 기업용 부문에 ‘올인’하지 않고 이스트소프트는 두 부문을 계속해서 이어가려고 한다.

또 개인들에게는 소프트웨어를 공짜로 제공하면서 기업 시장을 대상으로 유료 모델을 마련했다. 알약이 대표적이다. 무료 백신으로 시장의 주목을 단숨에 받았던 알약은 이제 기업 시장을 넘보고 있다.

김장중 사장은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가장 잘 한 결정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게임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 가장 잘 한 결정이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서 옳은 결정이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 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최근 창업 붐이 대단하다. 김 사장은 학생 때 창업했는데,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도 창업을 선택했을까.

아닙니다. 지금 대학생이라면 창업을 안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창업했던 93년은 어떤 붐이 일어난 때가 아니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몰려가니 ‘우’하고 따라가는 체질도 아니었습니다. 여러 군중 속에 파묻히기 보다는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지 한발 떨어져서 본질을 파악해 보려는 성격이라 지금같은 분위기라면 창업하지 않았을 겁니다.

창업해서 이만큼 키워놓은 사람 말 치고는 이해가 안간다.

많은 이들이 창업하는 시기는 그만큼 경쟁도 심하다는 것이죠. 자본도 몰리고 아이템들도 넘쳐나겠지만 그 만큼 경쟁도 심하죠. 만일 창업을 했더라도 모바일, 소셜커머스, SNS 게임 같은 것은 피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뛰어들면 그루폰 같은 회사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걸 염두에 둘텐데요. 단순한 아이디어 경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이 아이디어가 좋아서 성공했다고 진단하는 이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페이스북은 시스템이 아주 탄탄합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이죠. 이런 것 없이 여러 사람들이 뛰어드니 나도 뛰어든다고 하면 성공할 확율은 상당히 낮습니다.

오히려 거품이 꺼질 때 자신만의 기술과 아이템을 통해 접근하는 게 유리해 보입니다.

어떻게 창업을 결심했나.

93년 창업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사례가 많이 거론됐었죠.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를 보니 저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가능성이 보였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지도도 높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앞으로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올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작은 회사였죠. 오히려 IBM과 애플 간에 개방이냐 폐쇄냐의 경쟁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유복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죠. 중학교 때 친구가 애플 투 플러스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친구 집에 매일 가서 살다시피 했죠. 당시에는 프로그램도 많지 않았죠. 세운상가에 가서 지금으로 치면 불법 복제를 해서 프로그램을 얻곤 했습니다. 당시 세운상가의 한 매장이 새로운 프로그램이 나오면 디스켓에 담아 팔았고, 복사비도 받고 했어요. 보니 대학생 형들이었죠. 그분들은 당시 컴퓨터 잡지에 매장 광고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비즈니스죠.

그걸 옆에서 보고 있자니 봉이 김선달처럼 대동강물 팔아서 돈 벌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웃음)

첫 작품이 21세기 워드프로세서였다. 그 힘든 걸 첫 아이템으로 정한 것도 놀랍다.

당시엔 워드프로세서가 많지 않았어요. 멀티 윈도우를 구현할 수 있도록 만들었죠. 폰트들도 부드럽고 크기도 키울 수 있도록 했죠. 5월에 중간 고사가 끝나고 축제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당시 현대전자에서 공모전을 한다는 포스터를 봤습니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번 해보자고 했죠. 그런데 출품하고 떨어졌어요. 당시 아는 선배가 말해주는 데 아이템은 좋았는데 버그가 너무 많았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그 아이템을 보고 현대전자에서 같이 개발해보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부했죠.

대기업의 제안을 뿌리쳤단 말인가?

지금이나 그 때나 대기업과 함께 일하면 남는 거 없고 핵심 기술만 뺏긴다는 인식이 팽배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잖아요. 그냥 독자적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고 8개월 간 정말 밤을 낮처럼 하숙방에서 살았죠. 친구들도 휴학하고. 몇명을 ‘꼬셨죠’. 그렇게 개발된 걸 PC통신 천리안하고 하이텔에 베타를 올려놓고 놀러갔습니다. 부산 해운대에서 접속해 보니 난리가 났더군요. 근데 92년 6월에 아래 한글 2.0 베타가 나왔어요. 저희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던 기능들이 모두 다 구현됐고, 훨씬 좋았죠. 그 때부터 이상하게 뭔가를 하려고 하면 안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꼭 좋은 쪽으로 해결이 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호사다마’입니다. 예전 게임을 런칭하기에 앞서서도 몸이 굉장히 안좋았어요. 그래도 맘은 편했죠.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징조였거든요. 하하

일이 잘 풀렸다니 다행이다. 이스트소프트는 참 독특하다. 다른 게임 회사들은 게임만 집중한다. B2B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그 분야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이스트소프트는 두 개를 다하고 있다.

크게 보면 게임도 소프트웨어고 저희가 제공하는 알툴즈, 알약, 인터넷디스크 같은 것도 소프트웨어죠. 오히려 지금의 이스트소프트가 존재하는 이유가 두 개 부문이 적절히 조합이 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공유 가능한 핵심 요소들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저희 포트폴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비슷해요. 마이크로소프트도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하고 게임도 하잖아요. 인터넷 서비스도 하고. 운영체제나 검색을 빼고는 엇비슷하다는 거죠. 93년 창업을 하고 95년에 게임을 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게임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전혀 다른 성격의 조직을 운영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많이 버는 파트에 서로 근무하고 싶어하지 않겠는가? 위화감 같은 것도 있을 수 있고.

2000년에 소프트웨어 사업이 안정화 되면서 2002년부터 게임 진출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벌고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들을 벌어준 것이죠. 지금은 게임 부문이 차기작을 만들 수 있는 자금까지 벌고 있는 효자 부문인 것은 맞지만 그동안 지원을 받아 왔습니다. 물론 게임을 하고 나서 제대로 직원들에게 월급도 주고 했지만 여전히 저희는 이런 부문이 서로 유기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무료 백신은 정말 ‘쇼킹한’ 시도였다.

워드프로세서를 만들었지만 큰 성과가 없었죠. 회사는 그냥 유지 수준이었군요. 그러다가 압축 유틸리티인 알집을 만들었죠. 실은 내부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거였습니다. 습작 수준이었죠. 무료였고, 한국에 있으니 당연히 한글을 지원하죠. 외산 제품에 비해서는 떨어지는 건 사실이었고, 누구나 만들 수 있었죠. 무료로 공개했는데 인기가 많았어요. 하지만 내부적으로 ‘퀄리티가 좋지 않다’는 건 다 인식하고 있었죠. 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유료 판매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전담 조직을 새로 만들어 투자를 하도록 했죠. 기업 시장에서는 유료로 받고 있죠. 이런 경험 때문이었는 지 안티 바이러스 부분도 마찬가지더라구요. 무료로 나눠주고 돈을 내면 치료해주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근데 질은 별로 였죠. 무주공산 같아 보였습니다. 나오고 나서 정말 싹 정리시켰죠.

여전히 수익을 내려면 멀지 않았나.

당장은 그렇지만 수익을 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알약이 국내에서만 성공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한류 열풍 때문에 국내 콘텐츠 사이트에 접속하는 해외 네티즌들, 특히 동남아 쪽 사용자들이 알약을 알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동남아시아를 공략할 정식 버전이 나옵니다.

화제를 돌려보자. 인재상 중에 독특하게 ‘의리’가 있다. 조폭도 아니고 의리를 강조하는 게 궁금하다. 도전과 창의는 이해하겠는데 왜 의리도 있나.

사업을 해보니 성공하려면 혼자 잘 나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선배 혹은 회사의 시스템이 지원이 있어야 했죠. 그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분야에서 밥값을 하려면 한 3년은 누군가 돌봐줘야 합니다. 회사는 육성을 하는 것이죠. 회사 혹은 선배들이 시간을 쏟아 뭔가를 지원해야 나라는 존재가 탄생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전 그걸 의리라고 봅니다. 신입 사원들이 들어와서 생활하는 걸 보면 얼마 있다가 도망갈 것 같은 사람이 보입니다. 태도에서도 묻어납니다. 그러면 회사에서 그런 사원에게 투자할까요? 선배들이 더 좋은 프로젝트를 맡길 까요?

인터넷하드 사업을 빨리 했다. 최근 클라우드로 저장 공간을 주는 것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클라우드에 대해 뭔가를 준비하고 있나?

통신사들에게 클라우드는 상당히 유리한 흐름입니다. 인터넷 데이터센터나 회선 사업을 하다가 이제는 ‘플러스 알파’로 소프트웨어 사업에 뛰어들 수 있으니까요. 무선랜이나 LTE 같은 것들이 구축되면서 사업들이 더 번창을 하죠. 전 이제 시작 단계라고 봅니다. 저장공간도 주고 동기화 기능도 주니 사용자들도 편리함을 알고 많이들 사용합니다. 지금의 모습은 초기 단계라는 것이죠. 가령 생선회를 바로 자리에 떠서 나눠주는 모델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생선을 가지고 다양한 사업이 가능하죠. 여러 음식들을 조합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죠. 기기들도 메모리가 없이 그냥 클라우드로 바로 데이터들을 보낼 수 있는 상황도 오겠죠. 나름대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사업을 오래했지만 해외 시장의 성과는 여전히 미비하다. 이건 이스트소프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해법은 없는 것인가?

해외 시장 지출이 여의치 않았던 건 그만큼 질이 담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또 미묘한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도 쉽지 않죠. 싸이월드에 익숙해진 우리가 페이스북을 봤을 때 왠지 모르게 허전하죠. 그런데 해외에선 그게 통하죠. 그건 실력과는 무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신경숙 소설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해외 독자들에게도 통한 것은 훌륭한 번역가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유사해 보인다.

그렇죠. 품질은 계속해서 강화하면 된다고 봅니다. 소프트웨어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제대로 전달해줄, IT도 알고 영어 잘 하는 인력들이 필요합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그런 체계가 아주 잘 돼 있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에는 이런 인재들이 많이 부족하죠. 정부에 바람이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에 투자와 지원을 해줬으면 합니다. 물론 기업들도 이런 부분에 투자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해외 시장에 게임을 런칭할 때도 철저하게 번역은 퍼블리셔의 몫이라고 계약을 합니다. 그 시장에서 통하는 가치와 문화적인 것들을 아는 이들이 전달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혹은 최근 한류 붐이 일고 있는 것들은 서로의 문화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희도 미국 시장을 겨냥한 별도의 제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지에 타깃을 맞추고 개발하고 있습니다.

장시간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 마지막 질문 한가지만 더 하고 맺었으면 한다. 사업을 해 오면서 가장 잘 한 결정과 조금은 후회되는 결정이나 내용은 무엇인가?

앞서 밝힌대로 저희가 게임 사업을 한 것이 아주 잘 한 결정이라고 봅니다. 지금의 이스트소프트가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도 투자를 계속할 수 있게 된 실질적인 지원 세력이죠. 사업 초기에는 소프트웨어 부문이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시간과 자금을 지원해줬죠. 지금은 게임 파트나 신작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자금까지 마련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소프트웨어 부문을 계속해서 투자해 나갈 것입니다. 조금 후회되는 것은 거의 없지만 한가지 꼭 꼽으라면 자기 관리, 건강을 너무 보살피지 않은 것입니다.

영림원 권영범 사장도 마흔살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은 아주 건강하다고 한다. 기자도 이제서야 정신차리고 건강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늦지 않은 것 같다.

잘 관리해야죠. 웃음

그와 인터뷰를 한 것은 지난  5월 11일 오전이다.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장중 사장의 트위터에 이스트소프트 제주도연구소 부지에 가 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내년이 준공이란다. 그건 물어보지 않았던 대목이었는 데 아차 싶었다. 바로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다음에 제주도 연구소 탐방 때 ‘묻어가볼’ 요량으로 전화기를 내려놨다. 이스트소프트는 조금 있으면 사옥을 이전한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서초구 예술의 전당 근처로 간다. 많은 기업들이 판교로 가는 데 그들은 서울을 수성하기로 했다. 사옥을 이전하고 나서 다시 한번 방문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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